
같은 하네스 기술인데, 법률 한 분야에서 110억 달러가 됐습니다
먼저 밝혀 둡니다. 아래 이야기는 제가 직접 겪은 일이 아닙니다. 공개된 뉴스와 시장 분석 자료를 찾아 읽고 정리한 것입니다.
Harvey 관계자를 만난 적도, 내부 사정을 들은 적도 없습니다. 시장을 읽고 제가 방향을 정하는 근거로 삼은 자료입니다.
Harvey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Harvey는 2022년에 세워진 법률 AI 회사입니다. 창업자는 전직 변호사(Winston Weinberg)와 전직 DeepMind 연구자(Gabe Pereyra) 두 사람입니다.
2026년 3월에 발표된 투자 라운드 기준으로, 이 회사의 몸값(밸류에이션)은 110억 달러로 매겨졌습니다. 이번 라운드에서만 2억 달러를 새로 받았고(GIC와 Sequoia가 공동 주도), 지금까지 모은 돈은 10억 달러가 넘습니다.
투자자 명단에는 Sequoia, a16z, Kleiner Perkins, OpenAI, Coatue, GIC 같은 이름이 있습니다.
숫자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아래는 모두 2026년 3월 라운드 발표 시점 기준이며, ARR만 2025년 말 기준입니다.)
| 항목 | 값 |
| 밸류에이션 | 110억 달러 |
| 신규 펀딩 | 2억 달러 (GIC·Sequoia 공동 주도) |
| 누적 펀딩 | 10억 달러 이상 |
| 사용 변호사 | 100,000명 이상 |
| 고객사 | 1,300곳 이상 (60개국 이상) |
| ARR(연간 반복 매출) | 1억 9천만 달러 (2025년 말) |
| 운영 중인 커스텀 에이전트 | 25,000개 이상 |
하는 일은 계약서 분석, 실사(듀딜리전스), 규정 준수(컴플라이언스), 소송 업무 흐름 같은 법률 실무입니다. 가격은 변호사 한 명당 월 1,000~1,200달러 선이고, 최소 20~50석을 12개월 단위로 계약하는 구조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기술만 놓고 보면 특별하지 않습니다
제가 흥미롭게 본 지점은 여기입니다.
Harvey가 쓰는 근본 기술은, 요즘 AI 에이전트를 만드는 회사라면 대부분 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좋은 모델을 고르고, 그 주변을 잘 설계해서, 실제 업무를 해내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저는 지난 글에서 이 ‘모델 주변 설계’를 하네스(harness)라고 불렀습니다. 모델이 상향평준화될수록 차이는 하네스에서 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여기서 자연스러운 질문이 생깁니다. 같은 하네스 기술인데, 왜 법률이라는 한 분야에서만 이런 규모가 나왔을까요.
코딩은 레드오션, 버티컬은 아직 블루오션
제가 하네스 분야를 조사하면서 그린 시장 지도는 이렇습니다.
AI 에이전트가 가장 먼저, 가장 치열하게 붙은 곳은 코딩입니다. 개발자를 돕는 코딩 에이전트는 큰 회사부터 작은 팀까지 이미 다 뛰어들어, 과포화된 레드오션에 가깝습니다.
반대로 법률, 금융, 의료, 제조 같은 특정 산업(버티컬)에 특화된 AI는 코딩만큼 붐비지 않습니다. 다만 버티컬이라고 다 같은 단계는 아닙니다. 법률은 이미 Harvey라는 대표주자가 자리를 잡아, 버티컬 중에서도 가장 성숙한 축에 듭니다.
반면 그 안에서도 특허처럼 아직 대표주자가 없는 좁은 갈래(서브버티컬)는 빠르게 크고 있는 빈 땅에 가깝습니다.
왜 이 차이가 날까요. 코딩은 문제의 성격이 산업을 딱히 가리지 않습니다. 코드는 어디서든 코드입니다.
그래서 범용 도구 하나로 넓게 덮을 수 있고, 그만큼 자본이 큰 기업이 밀어붙이기 좋은 땅입니다.
법률은 다릅니다. 계약서 한 줄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어떤 실수가 나중에 큰 문제가 되는지는 그 분야를 아는 사람만 압니다. 범용 모델에 그냥 물어봐서 나오는 답으로는 부족합니다.
도메인 하네스는 왜 쉽게 무너지지 않나
여기서 한 가지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모델이 더 세지면 이런 특화는 다 필요 없어지지 않나?”
제가 조사하며 얻은 결론은 그 반대였습니다.
모델이 강해져도 하네스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대신 자리를 옮깁니다. 단순한 프롬프트 요령에서 시작해, 실행 환경과 그 분야의 지식, 결과를 걸러내는 품질 게이트 쪽으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뒤쪽으로 갈수록, 그 분야를 실제로 아는 사람이 아니면 만들기 어렵습니다.
법률로 치면 어떤 자료를 근거로 봐야 하는지, 어떤 답은 내보내면 안 되는지, 결과가 맞는지 어떻게 검사하는지 같은 것들입니다. 이건 모델의 능력이 아니라 도메인의 지식입니다. 모델이 아무리 좋아져도 이 층은 그 도메인에 붙어 남습니다.
그래서 저는 도메인 특화 하네스를 쉽게 따라잡히지 않는 해자로 봅니다. 범용 모델의 발전이 오히려 이 층의 값어치를 키운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좁고 깊은 쪽을 택했습니다
이 시장 지도를 그리고 나서, 저는 방향을 정했습니다.
범용은 거대 기업의 몫입니다. 자본과 인력이 훨씬 앞선 곳이 넓은 땅을 가져갑니다.
저는 그 싸움에 낄 처지가 아닙니다. 혼자, 이제 막 시작한 초기 단계니까요.
대신 좁고 깊은 도메인은 다른 논리가 작동합니다. 그 도메인을 아는 사람이 만든 하네스가 이깁니다. Harvey가 법률에서 보여준 게 그 증거라고 저는 읽었습니다.
오해를 막기 위해 덧붙이면, 저는 Harvey와 규모나 성과를 견줄 처지가 전혀 아닙니다. 방향이 같다는 이야기까지입니다.
그래서 제가 붙든 도메인은 특허입니다. 특허 명세서라는, 좁지만 깊은 문서 하나를 다루는 도구를 만들고 있습니다(Logical Patents). 매일 여러 건의 명세서를 다루는 변리사와 특허사무소가 쓸 것을 염두에 둡니다.
넓게 가는 대신, 이 한 분야의 하네스를 깊게 파는 쪽입니다.
그 하네스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모델보다 주변이 성능을 가른다’는 이야기는 지난 글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같은 기술이라도 어디에 얹느냐에 따라 값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 시장을 읽으며 제가 가장 오래 붙들었던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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