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합격 통지서를 받아도 아직 변리사가 아닙니다
저는 특허 명세서를 AI 도구로 직접 다뤄보면서, 변리사라는 직업의 '입구'가 어떻게 생겼는지 자주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그러다 한 가지 구조가 계속 눈에 밟혔습니다. 시험에 합격한 사람을 진짜 변리사로 길러내는 통로와, 지금 가장 빠르게 자동화되는 일이 정확히 겹친다는 점입니다.
이 글은 그 겹침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먼저 제도부터 정확히 짚겠습니다.
합격은 자격 취득의 시작일 뿐입니다
변리사 시험에 합격한다고 곧바로 개업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변리사법과 「변리사 자격 취득을 위한 실무수습 규정」(특허청 행정규칙)에 따라 법정 실무수습을 마쳐야 자격을 온전히 취득합니다.
현행 실무수습은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집합교육 250시간과 현장연수 6개월입니다.
집합교육 250시간은 직업윤리와 산업재산권법 실무, 출원·심판 실무 등으로 채워집니다. 세부 편성은 반기마다 조금씩 바뀌지만, 총 250시간이라는 골격은 그대로 유지됩니다.
눈여겨볼 대목이 하나 더 있습니다. 변호사 자격이 있는 사람도 이 수습을 면제받지 못합니다.
2016년 규정 개정 때 변호사에 대한 수습 면제 조항이 삭제됐고, 지금은 시험 합격자와 똑같이 수습을 이수해야 합니다. "자격시험을 통과한 것과 실무를 할 줄 아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판단이 제도에 박혀 있는 셈입니다.
특허사무소의 '이중 도제' 라인
실무수습의 현장연수 6개월은 대부분 특허사무소나 기업의 지식재산 부서에서 이뤄집니다. 이 현장에는 오래된 도제식 구조가 있습니다.
많은 사무소에는 명세서 작성을 전담하는 직원이 있습니다. 흔히 명세사라고 부르는데, 발명자의 기술 설명을 특허 문서(명세서)의 형식과 논리로 옮기는 일을 맡습니다.
그리고 변리사는 명세사가 쓴 초안을 검토하고 다듬어 완성합니다. 신입 변리사와 수습생도 이 과정에 붙어 문서를 써 보고, 선배 변리사의 빨간 펜을 받으며 실력을 쌓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명세사가 초안을 쓰고 변리사가 검증하는 층, 수습생이 써 보고 선배가 고쳐주는 층. 두 겹의 도제가 한 사무소 안에서 돌아갑니다.
변리사가 길러지는 실질적인 교실이 바로 이 라인입니다.
다만 이 명세사와 도제 구조는 제가 특허사무소에서 직접 일해 보거나 현직자를 인터뷰해 확인한 것은 아닙니다. 공개된 업계 자료와 여러 조사를 토대로 정리한 그림임을 먼저 밝혀 둡니다.
그런데 그 라인의 일이 자동화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도제 라인의 실무가, 지금 AI가 가장 먼저 손대는 영역이라는 데 있습니다.
명세서 초안 작성을 돕는 AI 도구들이 내놓는 효율 지표는 꽤 공격적입니다. 명세서 작성에 들던 시간이 20시간에서 5시간 수준으로 줄었다는 보고(약 75% 단축), 초안 생성이 2~5일에서 2~5분으로 압축됐다는 사례가 제시됩니다.
이 수치의 정확성은 도구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다만 방향은 분명합니다. 반복적인 초안 작성, 곧 명세사와 신입·수습생이 손으로 익히던 바로 그 일이 자동화의 첫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딜레마의 정체 — 연습 무대가 사라진다
여기서 양성 시스템의 딜레마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명세서 초안 작성은 단순 노동이 아니라, 신입이 특허의 논리와 문법을 몸으로 익히는 연습 무대였습니다. 그 무대에서 수천 건의 초안을 쓰고 고쳐 받으며 변리사가 완성됩니다.
그런데 AI가 초안을 대신 쓰기 시작하면, 사무소는 신입에게 그 반복 작업을 시킬 이유가 줄어듭니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신입 변리사 채용이 줄고 경력직 선호가 짙어지는 흐름이 관찰됩니다.
연습 무대가 좁아지면 도제식으로 전수되던 노하우의 통로도 함께 가늘어집니다. 자동화가 효율을 높이는 대신,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라인을 얇게 만듭니다.
사실 이 양성 라인은 이미 한 차례 줄어든 적이 있습니다. 앞서 말한 2016년 개정이 그렇습니다.
| 구분 | 2016년 개정 전 | 현행 |
| 이론·집합교육 | 400시간 | 250시간 |
| 현장연수 | 10개월 | 6개월 |
현장연수는 10개월에서 6개월로 줄었습니다. 양성에 들이는 시간은 제도적으로도 이미 축소돼 왔고, 이제 자동화가 그 축소에 가속을 더하는 그림입니다.
사무소 운영자의 딜레마
이 딜레마는 사무소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특히 무겁습니다.
AI 도구를 도입하면 당장의 생산성은 올라갑니다. 같은 인원으로 더 많은 출원을 처리할 수 있으니 도입을 마다할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그 도구가 대체하는 일이 바로 사무소가 미래 인력을 길러내던 라인입니다. 생산성을 위해 도입하는 순간, 자기 사무소의 인력 공급 시스템을 스스로 얇게 만들게 됩니다.
도입할 이유(효율)와 망설일 이유(양성 붕괴)가 같은 결정 안에서 동시에 작동합니다. 이것이 이 딜레마가 쉽게 풀리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수습이 배우는 것이 바뀌어야 합니다
저는 특허 실무를 AI로 다뤄보면서 이 문제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게 됐습니다.
솔직히 저는 이 흐름 자체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반복 작업을 도구가 덜어내는 방향은 시대의 흐름이고, 되돌리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흐름을 인정한다면, 수습이 배워야 할 것 자체가 옮겨가야 한다고 봅니다. 명세서를 손으로 써 내려가는 훈련에서, AI가 내놓은 초안이 논리적으로 타당한지를 따지는 훈련으로 말입니다.
작성 노동이 줄어드는 만큼, 신입이 길러야 할 능력은 판단과 검증 쪽으로 무게가 옮겨갑니다. 초안을 만드는 손보다, 그 초안의 논리가 맞는지 짚어내는 눈이 더 중요해지는 것입니다.
제가 만드는 Logical Patents를 변리사가 쓰는 도구로 좁히고, 변리사의 최종 검토를 절차 안에 넣어 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AI가 도제를 통째로 대체하기보다, 도제가 배워야 할 목록을 바꾸는 도구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물론 이 전환이 순탄할지는 저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다만 "AI가 변리사를 대체할까"라는 질문은, 저에게는 "우리는 다음 세대 변리사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출처(제도 사실관계): 변리사법 및 「변리사 자격 취득을 위한 실무수습 규정」(특허청 행정규칙), 2016년 개정 연혁, 실무수습 집합교육 편성. AI 명세서 도구 효율 수치는 업계 도구 공개 지표 인용. 명세사와 도제식 실무 구조에 관한 서술은 공개된 업계 자료와 인터넷 조사에 근거한 것이며, 필자가 특허사무소에서 직접 관찰하거나 현직자를 인터뷰해 확인한 내용이 아닙니다. 본 글은 일반적인 제도 해설이며 개별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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