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두 개의 법안 소식을 유심히 보고 있습니다
저는 변리사와 특허사무소가 쓰는 업무 도구 Logical Patents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요즘 국회에서 오가는 두 법안을 남다른 눈으로 보게 됩니다.
하나는 이미 시행일이 확정됐습니다. 다른 하나는 아직 입법이 진행 중입니다. 그런데 이 둘이 거의 같은 시기에 밀려오면서, 변리사가 고객의 발명을 다루는 방식 자체에 조용히 압력을 넣고 있습니다.
먼저 사실관계부터 정확히 구분하겠습니다. 확정된 것과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을 섞으면 큰 오해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확정된 것과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
'비밀유지권'은 변호사나 변리사가 의뢰인과 나눈 상담·자료를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함부로 들여다볼 수 없게 보호하는 권리입니다. 미국에서 ACP(Attorney-Client Privilege, 변호사·의뢰인 비밀유지특권)라고 부르는 개념과 닿아 있습니다.
두 제도의 현재 상태는 이렇게 다릅니다.
| 구분 | 변호사 비밀유지권(ACP) | 변리사 비밀유지권 |
|---|---|---|
| 상태 | 확정 | 미확정 (입법 진행 중) |
| 근거 | 변호사법 제26조의2 신설 | 변리사법 개정안 |
| 진행 경과 | 2026-01-29 본회의 통과, 2026-02-19 공포(법률 제21357호) | 2026-03-12 국회 산자위 통과 →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 중 |
| 시행 | 2027-02-19(공포 후 1년) 시행. 시행 전 주고받은 자료에도 소급 적용 | 본회의 통과·시행일 미정 |
| 예외 | 의뢰인 승낙, 공범관계, 위법행위 관여, 변호사 자기 권리 방어, 다른 법률의 특별규정 등 | (입법 확정 전) |
변호사 쪽은 사실상 끝난 이야기입니다. 시행일 전에 주고받은 의사교환과 자료에도 소급 적용된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변리사 쪽은 아직 국회를 완전히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산자위 문턱은 넘었지만 법사위 심사가 남아 있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와 법원행정처 등에서 제도의 본질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와 이견을 내면서 논의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변리사 비밀유지권이 이미 생겼다"고 말하면 사실과 다릅니다. 지금은 방향이 잡혀 가는 단계이지, 시행이 확정된 단계가 아닙니다.
왜 이 둘을 '동시 파동'으로 봐야 하나
제가 이 두 소식을 따로 보지 않고 묶어서 보는 이유가 있습니다.
비밀유지권이 강해진다는 건, 뒤집으면 비밀을 지켜야 할 의무의 무게도 함께 커진다는 뜻입니다. 권리가 세질수록, 그 권리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행동의 위험도 같이 커집니다.
여기서 변리사의 일상 업무 하나가 걸립니다. 고객이 맡긴 발명 내용은 대부분 아직 공개되지 않은 영업비밀입니다. 이걸 ChatGPT 같은 외부 범용 AI 서비스의 입력창에 그대로 붙여 넣으면, 그 정보가 어디에 저장되고 어떻게 쓰이는지 통제하기 어려워집니다.
법률 쪽에서 먼저 걸리는 것은 비밀유지의무 위반, 그리고 영업비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문제입니다. 우리 법에는 영업비밀을 비밀로 관리하도록 요구하는 규정(부정경쟁방지법)이 있는데, 통제되지 않는 외부 서비스에 자료를 그대로 넣는 방식은 이 '관리' 요건과 부딪힐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업무상 배임 같은 더 무거운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다만 배임은 재산상 이익과 손해라는 별도 요건이 필요해서, 외부 AI에 자료를 넣는 행위가 곧바로 배임이 된다고 단정할 일은 아닙니다. 분명한 점은, 비밀유지권이 제도로 자리 잡을수록 이런 리스크를 더 조심스럽게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한쪽에서는 "비밀을 더 강하게 지켜라"는 제도가 오고, 다른 쪽에서는 편하다는 이유로 고객 발명을 외부 AI에 넣는 관행이 있습니다. 두 흐름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파동이 이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변리사가 쓰는 도구의 조건이 바뀝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변리사·특허사무소가 앞으로 도구를 고를 때 따져야 할 조건이 달라진다고 봅니다. 편의성만으로는 부족하고, 비밀유지라는 요구를 같이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 나름대로 정리한 최소 조건은 세 가지입니다.
- 엔터프라이즈 인프라 위에서 돌아가는가. 아무 계정이나 쓰는 공개 서비스가 아니라, 데이터 통제가 가능한 업무용 인프라 위에서 작동하는지 봅니다.
- 입력한 자료가 모델 학습에 쓰이지 않게 차단되는가. 고객 발명이 다음 사용자의 답변 재료로 흘러가지 않도록 학습 차단이 걸려 있는지 봅니다.
- 변리사의 최종 검토가 구조에 들어 있는가. AI가 초안을 돕더라도, 책임지는 판단은 변리사가 하도록 절차가 설계돼 있는지 봅니다.
이 세 가지를 동시에 갖춘 도구여야, 앞서 말한 두 제도의 요구를 함께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라도 빠지면 편리함이 곧 위험이 됩니다.
제가 Logical Patents를 이 방향으로 설계하는 이유
사실 위의 세 조건은 제가 나중에 끼워 맞춘 명분이 아니라, 제품을 설계하던 초기에 직접 부딪힌 질문들이었습니다.
제품화를 고민하던 초기에 저를 가장 오래 붙든 질문이 "이 자료를 외부 AI에 그냥 넣어도 되나"였습니다. 여기에 해킹으로 자료가 새어 나갈 위험까지 겹쳐 생각하니, 공개된 범용 서비스에 고객 발명을 태우는 그림은 도저히 안심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엔터프라이즈 모델을 기본값으로 잡았습니다. 편의성보다 자료 통제가 먼저라고 판단한 결과입니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간 것이 자격 문제였습니다. 직접 법률 검토를 해보니, 돈을 받고 남의 명세서를 대신 작성하는 일은 변리사법상 변리사의 업무 영역에 해당했습니다. 그래서 이 도구를 변리사와 특허사무소, 즉 대리인이 쓰는 물건으로 방향을 못 박았습니다. 대리인 없이 혼자 출원하려는 사람을 겨냥한 서비스가 아닙니다.
같은 이유로 회원가입 절차에 변리사 인증 단계를 넣었습니다. 아무나 들어와 명세서 작성을 맡기는 구조가 되면, 앞서 말한 변리사의 역할이라는 선이 흐려지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변리사 비밀유지권이 언제 확정될지는 저도 모릅니다. 다만 방향은 이미 정해졌다고 봅니다. 비밀을 더 무겁게 지키라는 요구는 커지고, 외부 AI에 고객 발명을 던져 넣는 방식은 점점 설 자리를 잃을 겁니다.
그 변화가 오기 전에 도구의 조건부터 맞춰 두는 일. 저는 그게 지금 제가 준비할 수 있는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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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제도 사실관계): 변호사법 개정(서울신문·법률신문·김·장 뉴스레터), 변리사법 개정안(법률신문·비즈월드·이투데이·한국경제), 대한변호사협회 반대(법조신문). 본 글은 일반적인 제도 해설이며 개별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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