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서는 결국 제가 써야 했습니다
지난 화에서 저는 변호사 없이 혼자 가보기로 했다고 적었습니다.
그 결심에는 당연한 뒷일이 딸려 있었습니다. 대리인을 두지 않기로 한 이상, 상대에게 보낼 문서도 제가 써야 했습니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빈 화면을 열어놓고 앉으니 첫 문장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난생처음 써 보는 문서였습니다
제가 AI에게 처음 맡긴 법률 문서는 상대측 대리인에게 보낼 내용증명이었습니다.
내용증명은 어떤 내용의 문서를 언제 발송했는지를 우체국이 증명해주는 제도입니다. 등기로 나가기 때문에 상대가 언제 받았는지는 배송조회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적어 보낸 내용이 진실이라는 것까지 증명해주지는 않습니다. 제도 설명 자체는 검색하면 금방 나옵니다.
문제는 그 안에 무슨 말을 어떤 순서로 담느냐였습니다.
게다가 내용증명은 한 번 보내면 그대로 남습니다. 내가 어떤 주장을 했는지가 기록으로 고정된다는 뜻입니다.
가볍게 쓸 수 있는 문서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이 종류의 문서를 그날 처음 써 보는 비전문가였습니다.
AI가 처음 뱉은 초안은 엉뚱했습니다
그래서 AI에게 시켰습니다. 상황을 설명하고, 이런 문서를 써 달라고 했습니다.
돌아온 초안은 엉뚱했습니다.
형식은 그럴듯했습니다. 문장도 매끄러웠습니다. 그런데 제가 하려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제 사정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한 줄로 스쳐 지나갔고, 크게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 길게 늘어나 있었습니다.
읽으면서 든 생각은 하나였습니다. "이건 내 문서가 아닌데."
몇 번인지 세지 않았을 만큼 되돌렸습니다
거기서부터 되돌리기가 시작됐습니다.
여기는 이렇게 가야 한다고 말하면 그쪽으로 문서가 다시 나왔습니다. 읽어보면 또 다른 데가 어긋나 있었습니다. 고치라고 하면 고쳐졌고, 고쳐진 걸 읽으면 앞에서 맞던 대목이 흐트러져 있었습니다.
그 왕복을 몇 번 했는지는 세지 않았습니다. 세어볼 생각도 못 할 만큼 되돌렸다는 것만 기억합니다.
방향은 제가 쥐고 있었습니다
그 반복 속에서 한 가지는 분명했습니다.
방향을 정한 쪽은 저였습니다. AI가 먼저 "이렇게 가시죠"라며 길을 제시한 적은 없었습니다.
제가 계속 지적하고, 아니라고 말하고, 이쪽이라고 짚어주는 동안 문서가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갔습니다.
AI가 잘한 것은 문장이었습니다. 제가 어렴풋이 붙들고 있던 방향을 문서의 언어로 옮겨주는 일은 분명히 빨랐습니다. 제가 한 일은 그 방향을 고집하는 쪽이었습니다.
그 시기의 작업은 그런 형태로 굴러갔습니다.
그렇게 나온 문서를 보냈습니다
보내기 전에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었습니다. 문장 하나하나를 제 판단으로 확정한 뒤에 보냈습니다.
완성된 문서는 실제로 보냈습니다. 봉투에 넣어 우체국 창구에 낸 것이 아니라, 인터넷으로 접수하는 내용증명이었습니다.
보내고 나니 뿌듯했습니다.
그때는 변호사 없이도 내가 할 수 있겠다는 자신도 생겼습니다.
다만, 그 안에는
여기까지가 그날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AI가 만들어 준 초안 안에는, 실제로는 있지도 않은 것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건 보내기 전에 걸러냈습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 화에서 하겠습니다.
밝혀둘 점: 이 글은 필자 본인이 직접 겪은 경험을 기록한 것이며, 특정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나 대리가 아닙니다. 내용증명에 관한 서술은 일반적인 제도 설명입니다. 진행 중인 분쟁의 상대·기관·내용은 담지 않았습니다. 개별 사안은 사정에 따라 결론이 크게 달라지므로, 비슷한 상황이라면 변호사 등 전문가의 조력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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